모녀암투병기

[대장암투병기] 4. 첫 번째 수술

뭉치2020 2020. 7. 19. 21:22

2014년 11월 원자력병원에서 엄마는 첫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전에 입원해서 검사를 받고, 오전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순서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원자력병원에 엄마가 입원하던 첫 날부터 나는 엄마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사실 병원에서 자는 일은 겁이 났다. 눈으로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을 보면 덜컥 겁이 났고, 구석 구석 울고 있는 보호자들을 볼 때면 나도 같이 눈물이 나기 일 수였다. 그러나 병원에 엄마 혼자 재우는 건 더 마음이 불편한 일이였다. 엄마가 그냥 집에 가서 자고 오라고 했지만 끝까지 말리지 않는 걸 보면 엄마도 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 전날 병원 내의 의료용품 판매점에 들려 압박 스타킹을 구입하고, 의료진에게 수술 이후 사용할 물품을 전달 받았다. 수술 일 아침 아빠는 이른 시간 병원에 도착해서, 복도와 병실을 왔다 갔다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시 엄마와 아빠를 위해 자리를 피해주고 돌아왔다.

 

잠시 후 수술실로 이동을 위해서, 침대를 밀어주는 직원 분이 도착했다. 평소에 이용하지 않는 엘레베이터를 통해 아빠와 와 나는 침대에 누운 엄마와 함께 이동했다. 막상 수술 당일이 되니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질문과 함께 무섭고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리고 엄마가 한 없이 가여워졌다. 늘 그렇듯 너무 담담하게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고, 눈물을 꾹 참고 엄마를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수술 실에 들어가고 난 후 나는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 울기 시작했다. 아빠도 얼마나 속상할까 생각했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난지 얼마 후 다른 환자들도 한 사람씩 수술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술실 안내판에 엄마의 이름 끝 상태란이 수술준비에서 수술중으로 바뀌고 나니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술실 내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를 내가 가서 받았다. "** 보호자분, 선생님께서 설명하신다고 수술실 앞으로 나오시래요.", 전화의 내용을 보호자 대기실의 다른 이들에게 전했다. 한 분이 급하게 물건을 챙겨 보호자 대기실 밖으로 나가니 조금 있다 의사 선생님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아빠가 "전화오면 안 좋은거야. 상태가 좋지 않은거지. 끝날 때 까지 전화 안오는게 좋은거야." 아빠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엄마의 수술을 계속 기다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할 즈음에 다시 한번 전화기가 울렸다. 이번에도 나서서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아 든 다른 사람이 "**보호자분, 선생님께서 설명하신다고 수술실 앞으로 나오시래요." 엄마의 이름이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아빠 우리 나가야해." 라는 말을 하고, 정신 없이 보호자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보호자 대기실 앞으로 나와 수술실 앞에 서 있는데, 과장님 모습이 보였다. "두 분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종양이 커서, 수술을 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경과 되었는데 유관상 보이는 종양은 모두 깨끗하게 제거되었습니다. 제거 된 종양을 가지고 이제 검사를 할 예정입니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소요될 수 있고, 환자는 회복실에서 회복하신 후에 병실로 바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다행이였다. 선생님의 말을 해석할 겨를도 없이 머릿 속에 다행이다만 반복했다. 

 

"아빠, 전화오면 안 좋은거라면서 선생님이 설명해주는거잖아." 당황한 마음에 아빠에게 톡 쏘아 붙이고 보호자 대기실로 다시 돌아가 앉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호흡기를 단 엄마가 나왔다. 많이 아파하는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나왔지만 엄마가 수술에서 잘 깨어난 것만 해도 참 고마웠다. 그렇게 엄마는 1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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