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암투병기

[대장암투병기] 3. 외할머니 딸, 우리 엄마

뭉치2020 2020. 7. 16. 09:59

한 달이 지나고 엄마는 김장을 앞두고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입원을 앞두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은 외할머니를 제외 한 모든 가족들 사이의 공공의 비밀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김장사랑은 참 유난했다. 몸이 아프셔서 움직이지 못하셔도 바닥에 비닐을 깔고 바닥에 주저 앉아 동네 이웃들과 자식들을 동원해 진두지휘 하시며 매해 포기 수의 신기록을 세우는 분이셨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김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리고 알아봤자 속상만 할 것이니, 김장이 끝나고 암에 걸렸다는 걸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엄마가 치질 수술을 하러 입원한 줄 아셨다.


엄마는 검사 결과를 듣고 난 후 회사를 휴직하고, 한 달 간 수술을 기다렸다.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엄마는 한 달 동안 검사 결과를 숨기기 위해 출근시간에 나가, 퇴근시간에 돌아오는 일과를 보냈다고 한다.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하던 사람이 그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들어오는 한달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나는 왜 김장 앞두고 수술 날짜 잡았냐고 할 줄 알았는데 별 말씀 안하시더라.” 병실로 들어서는 나에게 나엄마는 외할머니의 반응을 전했다. 이미 10번쯤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처음 듣는 양 “그래, 외할머니 분명 아쉬웠지만 내색 못하셨을거야.”라고 반응했다. 엄마가 매 번 외할머니의 반응 이야기를 할 때면, 외할머니를 향한 엄마의 양가 감정이 느껴졌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오랜 시간 애증의 관계였다. 오죽하면 엄마는 “두 호랑이 사이에서 기에 눌려사는 토끼 꼴이다.”라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했다. (참고로 나와 외할머니는 호랑이 띠고 엄마는 토끼띠이다.) 우리 외할머니로 말하자면 누구 앞에서도 기 죽는 바가 없으시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장부 스타일의 아들 편애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종갓집 종손 며느리이다. 엄마가 부득이하게 외할머니와 다시 살림을 합치면서 엄마는 늘 외할머니의 통치 아래 살았다. 다시 생각해도 통치다. 밤낮으로 외할머니의 운전기사로 심부름꾼으로 엄마는 시달렸고, 나는 그런 외할머니가 많이 미웠다. 신기한 건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는
외할머니도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면 “나쁜년 지 애미 고생하는지도 모르고.”라며 나를 구박했다.

아빠는 엄마를 입원시키고, 내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수술 전 올라오겠다고 했다. 아빠는 집에 도착해서 외할머니에게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외할머니가 놀라셨다고 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어떤 내색도 하지 않으셨고, 예정 된 김장을 마치셨다. 나와 엄마는 외할머니가 큰 충격을 받으실까 걱정했던게 기우라며 역시 외할머니 그 와중에도 김장을 하셨다며 흉 아닌 흉을 봤다.

수술 이 후 엄마는 나에게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수술 잘 마쳤다는 이야기를 해드리라고 했다. “할머니 나야. 엄마 수술 잘 마쳤고 이제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해.”라고 이야기했다. 한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할머니는 “그래 수술 잘했음 되었다. 잘 간호해라.”라며 이야기를 하고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정말 외할머니가 미웠다. 딸에게 정말 매정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퇴원을 한 엄마에게 전해 듣게 된 이야기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외할머니는 ‘내가 얼마나 떼국년 같았으면 그 큰 수술을 받으러 가면서도 얘길 안했을까.’라며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투병기간 내에도 외할머니와 엄마의 애증의 역사는 계속 되었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염려하나 여전히 그 방식이 서툴렀고, 착한 딸이던 우리 엄마는 본인을 염려하는 엄마에게 때로는 성질을 부리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외할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다리로 엄마의 밥상을 차려주면, 엄마는 외할머니의 수고에 화를 냈다. 자신을 위해 다리를 절며 움직이는 모습이 속상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습이 좋아보였다. 늘 외할머니 앞에서 감정 표현 한 번 제대로 못하던 우리 엄마가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좋았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엄마는 투병 기간 내내 화나 짜증을 낸 적이 거의 없었다. 치료가 너무 힘들어 제발 그만하게 해달라고 할 때도 화나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던 엄마였다. 그 시절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에게도 마음의 안식처인 엄마가 있다는게 참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생각해서 나에게 엄마가 옆에 있는 게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딸에게 있어 엄마는 정말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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